산업경제분석
에너지 안보 리스크와 한국 산업의 녹색전환 전략
이상원 연구위원
요 약
최근 미국-이란 간 군사적 충돌이 이어지면서 2022년과 유사한 에너지 충격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이는 화석연료 체계가 축소되는 속도와 재생에너지 체계가 구축되는 속도 사이의 공백에서 비롯된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주며, 녹색전환을 ‘속도’가 아닌 외부 충격에도 안정적인 ‘회복력’의 문제로 재점검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의존도·제조업 비중·산업 에너지소비 비중이 모두 높은 ‘삼중 노출 구조’를 지니고 있어, 에너지 가격 충격이 기업 수익성 악화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특히 취약하다. 실제로 2022년 위기 당시 에너지 다소비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하락한 바 있다.
주요국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재정·금융 수단을 동원해 전환 리스크에 대응하고 있으나, 재정 여력과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가 상이한 한국에 이러한 접근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본고는 단기 비용 안정화(산업용 전기요금 운용 개선), 중기 투자여력 확보(전환금융 실효성 제고 및 탄소차액계약제도 도입), 장기 산업구조 고도화(고부가가치산업 전환 촉진)라는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 리스크 대응형 전환 전략을 제시한다.
1. 서론
최근 미국-이란 간 군사적 충돌로 인해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우려 단계를 넘어 현실화되었다. 전쟁 발발 이후 국제 유가와 액화천연가스(LNG) 현물가격의 변동성이 확대되었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나타났던 에너지 가격 급등과 공급망 재편이 유사한 형태로 재현되고 있다는 평가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리스크의 재부상은 단순히 일시적인 가격 충격에 그치지 않고, 각국이 추진해 온 녹색전환 경로 자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본고는 이처럼 현실화된 에너지 안보 충격을 계기로, 에너지 시스템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취약성이 산업 부문의 리스크로 전이되는 경로를 분석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의존도, 제조업 비중, 산업 부문 에너지소비 비중이 모두 높은 구조적 특성이 있어 주요국 대비 외부 에너지 충격에 대한 노출도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에서 이러한 분석은 특히 의미가 있다.
기존의 녹색전환 논의는 대체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달성 속도와 이행 수단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러나 2022년 에너지 위기와 최근의 지정학적 충돌이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전환의 속도 못지않게 전환 경로의 안정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화석연료 기반 시스템이 축소되는 속도와 재생에너지 기반 시스템이 구축되는 속도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면 그 공백 구간에서 에너지 시스템 전체의 취약성이 증폭되며, 이는 지정학적 충격과 결합될 때 산업 경쟁력에 직접적인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본고는 녹색전환을 단순한 목표 달성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 충격에도 시스템 안정성을 유지하며 전환을 지속하는 회복력(Resilience)의 문제로 재정의하고자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고는 ① 글로벌 에너지 리스크 재확대의 배경을 살펴보고, ② 한국 산업이 이러한 리스크에 구조적으로 얼마나 노출되어 있고 그 전이 경로는 무엇인지를 실증하며, ③ 주요국의 정책 대응을 비교 분석한 뒤, ④ 이를 토대로 한국에 특화된 리스크 대응형 전환 전략을 제시한다.
2. 글로벌 에너지 안보 리스크와 녹색전환 경로의 재점검
(1) 최근 에너지 리스크 재확대 동향
최근 미국-이란 간 군사적 긴장 고조는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하는 원유 및 LNG 물동량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며 국제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을 다시 키우고 있다. 이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나타났던 에너지 가격 급등 및 공급망 재편과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만 두 시기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도 있다. 2022년 위기 이후 EU를 비롯한 주요국은 에너지 공급선 다변화, 전략비축유 방출 체계 정비, 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통해 일정 수준의 제도적 회복력을 갖추었으나, 이 회복력이 향후 유사한 충격에 얼마나 견고하게 작동할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따라서 최근의 리스크 재확대는 지난 위기 이후 구축된 에너지 시스템의 복원력을 재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2) EU의 에너지 위기 대응 사례
EU는 2018년부터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구조적 기조를 견지하면서도, 2022년 에너지 위기 국면에서는 화석연료를 통한 공급 안정과 수요 절감을 병행하는 유연한 대응을 보였다. Eurostat 통계에 따르면 EU 전력믹스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32%에서 2024년 47%로 15%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고체 화석연료의 비중은 2020년 12.6%(저점)에서 2022년 15.9%로 일시 반등한 뒤 2024년 9.6%로 다시 하락했다. 이러한 반등은 재생에너지 중심의 구조적 전환 기조 속에서도 공급 충격 국면에서는 화석연료가 시스템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완충재 역할을 하였음을 보여준다.
수요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난다. EU의 총 최종에너지 소비는 2018년 약 9억 4,480만toe에서 2024년 약 8억 7,790만toe로, 화석연료(고체 화석연료·천연가스·석유제품 합산) 소비는 약 5억 7,040만toe에서 약 5억 1,350만toe로 각각 감소했다. 이는 가격 상승과 공급 불안정성에 대응해 고강도의 수요 조정과 에너지 절약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다만 <그림 1>의 (a)는 전력 생산 기준의 에너지원별 구성비를, (b)는 최종에너지 소비구조 전체를 나타낸 것으로 분석 대상과 범위가 다르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b)의 총 최종에너지소비지수는 2022년 위기 전후로 등락을 반복하는데, 이는 경기 요인 등 에너지 가격 외의 변수도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므로 화석연료 비중 변화와의 인과관계는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
이러한 EU의 대응은 두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재생에너지로의 구조적 전환 기조 자체를 후퇴시키지 않으면서도 단기적으로는 화석연료의 완충적 역할을 인정하는 실용적 접근이 가능하다. 둘째, 가격 충격 국면에서 수요관리 정책이 공급자 측 대응 못지않게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이 두 가지 시사점은 이후 제5장에서 논의할 한국의 정책 설계에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3) 녹색전환의 역설과 회복력 있는 전환 경로
에너지 시스템의 취약성은 화석연료 체계가 축소되는 속도와 재생에너지 체계가 구축되는 속도 사이의 공백에서 비롯되는 구조적이고 필연적인 현상이다. 이 공백은 평상시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지만, 지정학적 리스크와 같은 외부 충격과 결합되면 그 영향이 급격히 증폭된다.
본고는 탈탄소 전환 과정에서 오히려 에너지 불안정성과 비용 부담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이러한 현상을 편의상 ‘녹색전환의 역설(Green paradox)’로 지칭한다. 다만 이 용어는 자원경제학에서 한스-베르너 신(Hans-Werner Sinn)이 제시한 그린 패러독스, 곧 미래의 탄소규제 강화를 예상한 자원 보유국이 오히려 화석연료 채굴을 앞당기는 현상과는 개념적으로 구분된다. 본고에서 사용하는 ‘녹색전환의 역설’은 전환 과정 자체에 내재한 시스템적 공백에서 비롯되는 일시적 불안정성만을 가리키는 용어로 한정해 사용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비추어 볼 때 녹색전환 정책의 핵심 과제는 감축 목표를 조기에 달성하기 위한 속도 경쟁이 아니라, 외부 충격에도 시스템 전반의 안정성을 유지하며 전환을 지속할 수 있는 ‘회복력 있는 전환 경로(Resilient transition pathway)’를 설계하는 데 있다. 이는 앞서 살펴본 EU의 사례, 즉 구조적 전환 기조를 견지하면서도 단기적으로는 화석연료의 보완적 역할과 수요관리를 병행하는 유연한 접근과 맥을 같이한다. 이러한 회복력 있는 전환 경로라는 개념은 제3장의 산업 리스크 진단과 제5장의 정책 대응 방향 설계 전반에 걸쳐 핵심적인 분석 틀로 활용된다.
3. 에너지 안보 충격의 한국 산업 리스크 전이 메커니즘
(1) 한국 산업의 ‘삼중 노출 구조’
한국은 에너지 수입의존도, 제조업 비중, 산업부문 에너지소비 비중이 모두 높은 수준을 보이는 ‘삼중 노출 구조’라는 구조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IEA 및 World Bank의 2024년 기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84.2%, 제조업 비중은 26.6%, 산업 부문 에너지소비 비중은 26.4%로 나타난다. 이 세 가지 지표는 각각 외부 공급 충격에 대한 노출도, 에너지 집약적 산업의 경제적 비중, 실제 에너지소비에서 산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며, 세 지표가 동시에 높은 국가일수록 에너지 가격 충격이 실물경제로 전이될 잠재적 경로가 넓다고 해석할 수 있다.
<표 1>과 <그림 2>를 국가 간 비교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구조적 노출이 지닌 특성을 보다 정교하게 이해할 수 있다. 에너지 수입의존도만 놓고 보면 일본(87.4%)이 한국(84.2%)보다 다소 높고, 산업 부문 에너지소비 비중 역시 일본(29.0%)이 한국(26.4%)을 앞선다. 반면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26.6%)이 일본(20.6%), 독일(18.0%), 미국(9.8%) 등 비교 대상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낸다.
즉, 한국의 구조적 취약성은 특정 지표 하나가 압도적으로 높다기보다, 일본과 유사한 수준의 높은 에너지 수입의존도 및 산업 에너지소비 비중에 가장 높은 수준의 제조업 비중까지 결합되어 있다는 데 있다. 이 조합은 한국 경제 내에서 에너지 가격 충격에 노출된 산업 기반의 상대적 비중이 비교 대상국 중 가장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과 함께 고위험 노출군으로 분류되면서도 정책적 대응의 시급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 국가 | 에너지 수입의존도 | 제조업 비중 | 산업 에너지소비 비중 |
|---|---|---|---|
| 한국 | 84.2 | 26.6 | 26.4 |
| EU | 57.3 | 14.3 | 23.1 |
| 미국 | 0 | 9.8 | 17.8 |
| 중국 | 24.0 | 24.7 | 48.4 |
| 일본 | 87.4 | 20.6 | 29.0 |
| 독일 | 70.6 | 18.0 | 25.6 |
| 영국 | 48.5 | 8.0 | 18.0 |
| 인도 | 36.8 | 12.6 | 39.7 |
자료: IEA, World Bank 데이터(2024년 기준 통계)를 활용하여 저자 작성, 원출처는 이상원(2026), p. 3.
주: 1)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국가 총에너지 공급량 중 순에너지 수입량 비중을 의미하며, 미국은 수입보다 수출량이 많아 해석 편의상 0%로 표시함. 2) 중국, 일본, 인도의 에너지 수입의존도 수치는 2023년 기준임.
(2) 가격 전가 경로
에너지 시스템의 취약성은 가격 경로를 매개로 산업 부문의 직접적인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는 핵심 전이 기제로 작동한다. 에너지 가격의 급격한 상승과 변동성 확대는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산업의 생산비 증가로 직결되며, 특히 녹색전환의 과도기에 놓여 자본투자 부담이 큰 기업일수록 이러한 외부 충격에 더 취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2022년 국제유가 및 LNG 가격의 변동성이 확대된 시기, 국내 철강·석유화학 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이 하락하는 흐름이 관찰된다. 브렌트유 가격, LNG 가격, 철강·석유화학 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을 함께 살펴보면, 2022년 에너지 가격 급등 국면에서 해당 업종의 영업이익률이 큰 폭으로 하락한 뒤 완만한 변동성을 지속하는 패턴이 확인된다.
다만 기업의 수익성은 환율, 최종수요 경기순환, 원자재 가격 등 대외 경제 변수로부터 복합적인 영향을 받는 만큼, 에너지 가격의 변동을 영업이익률 하락의 유일한 요인으로 단정하기보다는 에너지 집약적 산업구조하에서 에너지 가격이 경영 실적에 유의미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3) 수익성 악화-투자 위축 연쇄 고리
에너지 가격 충격은 단순한 비용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산업 경쟁력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리스크로 작용한다. 영업이익 감소는 신규 설비투자나 저탄소 기술 전환을 위한 자금 조달 여력을 위축시키며, 장기적으로는 녹색전환 투자 자체를 제약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특히 저탄소 전환에 필요한 설비투자는 초기 비용이 크고 회수 기간이 길어, 일시적인 수익성 악화가 발생해도 기업들은 이러한 장기 투자를 우선적으로 축소하거나 연기하기 쉽다.
이처럼 에너지 안보 위기가 산업계 내부의 ‘비용 상승-수익성 악화-투자 위축’ 경로를 따라 확산되는 과정은 에너지 시스템의 취약성이 실제 산업 리스크로 전이되는 핵심적인 메커니즘이다. 이 연쇄 고리는 한번 형성되면 스스로 강화되는 경향을 지닌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즉, 투자 위축으로 저탄소 기술 전환이 지연될수록 기업은 향후 유사한 에너지 가격 충격에 더 취약한 상태로 남고, 이는 다음 충격 국면의 수익성 악화 폭을 더 키우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어느 지점에서 끊어낼 것인가가 정책 설계의 핵심 과제이며, 이는 제5장에서 제시할 단기-중기-장기 정책 패키지의 기본 문제의식이 된다.
4. 주요국의 정책 대응 비교
최근 주요국의 정책 변화는 탈탄소 목표 자체를 수정하기보다는,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비용·고위험을 관리하면서 산업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재설계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EU, 미국, 일본 등이 발표한 정책자료를 종합하면 이들 국가는 에너지 비용 완화, 투자 지원 확대, 공급망 강화라는 세 가지 공통 목표를 추구하고 있으나, 이를 구현하는 구체적인 정책 수단과 대응 방식에는 국가별로 뚜렷한 차이가 있다.
| EU | 미국 | 일본 | |
|---|---|---|---|
| 정책 기조 | 에너지 안보 + 탈탄소 가속화 | 에너지 안보 + 첨단제조업 부흥 | 에너지 안보 + 산업구조 전환 |
| 대표 정책 | REPowerEU, 산업가속화법(IAA) |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 | GX 추진 전략 |
| 비용 완화 | 에너지 가격 상한제, 직접 보조금 한시 완화 | 원자력·첨단제조 분야 인센티브 | 탄소가격제(단계적 도입) + 재정 지원 병행 |
| 투자 확대 | 재생에너지 계통 보강, 효율 개선 투자 | 특정 우선순위 기술 한정 선별적 투자 | GX 이행 채권 기반 대규모 민관 투자 |
| 공급망 강화 | 핵심원자재법(CRMA), 수입선 다변화 | 공급망 리쇼어링 및 프렌드쇼어링 강화 | 수소·암모니아 및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 |
자료: European Commission, The White House, Ministry of Economy, Trade and Industry에서 발표한 정책자료를 활용하여 저자 작성, 원출처는 이상원(2026), p. 4.
(1) EU
EU는 에너지 안보와 탈탄소 가속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정책 기조하에서 REPowerEU, 산업가속화법(Industrial Accelerator Act)을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비용 완화 측면에서는 에너지 가격 상한제와 직접 보조금의 한시적 완화를, 투자 확대 측면에서는 재생에너지 계통 보강과 에너지 효율 개선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공급망 측면에서는 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을 통해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2)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후퇴하는 가운데, 미국은 에너지 안보와 첨단제조업 부흥을 정책 기조로 삼아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을 대표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첨단제조, 탄소포집, 원자력 등 특정 우선순위 기술에 한정해 투자를 선별적으로 유인하는 데 정책의 무게중심이 있으며, 공급망 측면에서는 리쇼어링(Reshoring) 및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3) 일본
일본은 에너지 안보와 산업구조 전환을 정책 기조로 GX 추진 전략을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다. 비용 완화 측면에서는 탄소가격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면서 이에 따른 기업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재정 지원을 병행하고 있고, 투자 확대 측면에서는 GX 이행 채권을 기반으로 한 대규모 민관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공급망 측면에서는 수소·암모니아 및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4) 시사점
세 국가군의 정책 대응을 종합하면 에너지 안보 리스크에 대응하는 방식에는 국가별로 강조점이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가격 신호를 통한 시장 기능에만 의존하지 않고 재정·금융 수단을 통해 전환의 리스크를 정부가 일정 부분 분담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설계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특히 GX 이행 채권처럼 국채 발행으로 장기 재원을 조달해 민간 투자와 연계하는 방식이나, 탄소가격제의 단계적 도입과 재정 지원을 병행하는 방식은 한국의 정책 설계에도 참고할 만한 시사점을 준다.
주요국의 대응을 관통하는 핵심 시사점은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유연하고 전략적인 정책 패키지가 녹색전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필수 전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요국의 접근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EU는 역내 통합 전력시장과 대규모 재정 여력을 바탕으로 시스템 차원의 수요관리가 가능하며, 미국은 셰일 자원을 바탕으로 한 에너지 자립도와 거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세제 인센티브 중심의 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자원 빈국이면서 제조업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가장 유사한 참고 사례이지만, GX 이행 채권과 같은 대규모 국채 발행이 가능한 배경에는 자국 통화 표시 국채에 대한 높은 내국인 보유 비중이 있어, 한국이 동일한 규모로 재원을 조달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한국은 에너지 자원의 절대적 수입 의존, 상대적으로 협소한 내수시장, 제한적인 재정 여력이라는 제약 조건 속에서 정책을 설계해야 하는 만큼, 주요국의 정책을 참고하되 한국의 구조적 특성에 맞는 독자적인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
5. 한국의 정책 대응 방향: 리스크 대응형 전환 전략
(1) 정책 설계 원칙
지속 가능한 녹색전환을 위해서는 단기적 충격 흡수와 장기적 구조 개편을 아우르는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녹색전환은 궁극적으로 에너지 안보 강화와 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한 필수 과제이며, 한국 역시 이러한 전환 기조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다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주요국과 동일한 정책 접근을 적용하기에는 한국의 구조적 여건상 한계가 존재한다.
특히 전환 과정에서는 에너지 가격 변동성과 산업 부문의 비용 부담이 확대될 수 있는 만큼, 이를 완화하려면 ‘단기 비용 안정화-중기 투자여력 확보-장기 산업구조 고도화’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정책 패키지가 필요하다. 이 세 단계는 순차적으로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계되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하는 정책 축으로 이해해야 한다. 단기 비용 안정화 조치가 없으면 기업의 즉각적인 생산 축소 위험을 막을 수 없고, 중기 투자여력 확보가 없으면 단기 안정화 이후에도 근본적인 저탄소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장기 산업구조 고도화가 없으면 앞의 두 단계가 임시방편적 비용 이전에 그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정책 설계 원칙에 기반하여 본고는 산업용 전기요금 운용 개선(단기), 전환금융의 실효성 확보와 탄소차액계약제도 도입(중기), 고부가가치산업 전환 촉진(장기)이라는 세 가지 핵심 정책 수단을 제시한다. <표 3>은 이러한 정책 수단을 시계열 축과 정책 목표 축에 따라 정리한 것이다.
| 시계열 | 정책 목표 | 핵심 수단 | 재원·이행방식 |
|---|---|---|---|
| 단기 (~2027) | 비용 안정화 | 산업용 전기요금 합리화 연료비 연동제 운용 개선 |
기후대응기금 한전 재무구조 개선 |
| 중기 (~2030) | 투자여력 확보 | 전환금융 실효성 제고 탄소차액계약제도(CCfD) 도입 |
배출권 유상할당 수입 한국형 시장안정화제도(K-MSR) 연계 |
| 장기 (~2035) | 산업구조 고도화 | 고부가가치산업 전환 촉진 무탄소 전력공급망 확보 |
R&D 세액공제 고도화 특화 정책금융 |
자료: 저자 작성.
(2) 단기 대응: 산업용 전기요금 운용 개선
1) 문제 진단
한국은 2021년부터 연료비 연동제로 분기당 ±5원/kWh의 상·하한 밴드를 이미 운영하고 있다. 다만 이 제도는 비대칭적으로 운용되어 왔다. 2022년 이후 연료비 조정단가는 17분기 연속 상한(+5원)에 고정되어 산업계 비용 충격을 흡수해 왔지만, 최근 연료비 하락으로 인하 요인이 발생한 국면에서도 한전의 재무 부담을 이유로 하한(-5원) 적용은 보류되고 있다. 즉 문제는 제도의 부재가 아니라, 상한만 작동하고 하한은 작동하지 않는 비대칭성이다.
이에 따라 원가 미반영분이 한전의 손실로 누적되었고, 2027년 말 한전채 발행한도 특례가 일몰되면 2028년부터 발행 여력이 크게 줄어들 예정이다. 향후 가격이 다시 급등할 경우, 상한을 통해 산업계 부담을 흡수할 여력 자체가 축소될 수 있다.
2) 정책 설계 방향
필요한 것은 새로운 가격 상한제 도입이 아니라, 기존 제도의 대칭적 운용이다. 첫째, 상한 적용으로 발생하는 원가 미반영분의 규모와 회수 시점에 대한 사전적·투명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연료비 하락기에는 하한을 실제로 적용해 미반영분을 상쇄해야 한다. 이러한 대칭적 운용 없이는 미반영분이 계속 쌓여 한전의 재무 위험을 키우고, 결국 더 급격한 요금 인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이는 EU가 2022년 활용한 가격 상한제·보조금 한시 완화와 문제의식은 같지만, 한국은 제도 신설이 아니라 운용 개선이 과제라는 점에서 다르다. 단일 공기업 체계인 만큼 운용 기준 변경도 비교적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3) 형평성 및 재원 확보 방안
미반영분 상쇄를 한꺼번에 진행하면 요금 급변동을 낳을 수 있으므로, 국제 에너지 가격 안정화 추이를 보며 단계적으로 회수하되 국제 경쟁에 노출되어 있으면서 저탄소 전환 투자계획을 제출한 기업에는 회수 일정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조건부 접근이 필요하다. 이는 다음 절에서 다룰 중기 투자여력 확보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요금 운용 개선만으로는 한전의 부채 구조 문제를 해소하기 어려운 만큼, 2028년 발행한도 축소에 대비해 기후대응기금 등 기존 재원을 활용한 재무구조 개선 지원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3) 중기 대응: 전환금융 실효성 확보 및 탄소차액계약제도 도입
1) 전환금융의 실효성 제고
한국의 녹색금융·전환금융 체계는 분류 체계와 공시 기준 등 제도적 기반은 갖추었으나, 실제 지원 대상 설정에서는 개선의 여지가 있어 왔다. 2025년 개정 이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업종에 대해 배출원단위 상위 20% 이내 기업만 녹색 부문으로 인정했고, 별도의 전환부문 역시 LNG 발전, 블루수소 제조 등 5개 활동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 결과 철강·석유화학 중·하위권 기업, 즉 지금 막 전환을 시작하려는 에너지 가격 충격 취약 기업일수록 오히려 두 범주 어디에도 해당하지 못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역설이 발생해 왔다.
이러한 한계를 정부도 인식하여, 2026년 1월 1일부터 개정된 K-Taxonomy를 적용해 경제활동을 기존 84개에서 100개로 확대했다. 다만 이 확대가 철강·석유화학 중·하위권 기업의 실질적 포섭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시행 초기 단계라 향후 결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전환금융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분류 체계 확대에 그치지 않고 정책금융기관의 신용보강을 통해 민간 금융기관의 참여를 유도하는 후속 조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2) 탄소차액계약제도의 도입 필요성
한국 배출권거래제(K-ETS)는 2026년 시작된 제4차 계획기간에도 철강 등 탄소 누출 우려 업종에 100% 무상할당을 유지하고 있어, 정작 저탄소 기술 투자를 유인할 탄소가격 신호는 부재한 상태다. 이러한 딜레마의 대안으로 정부도 이미 탄소차액계약제도(CCfD) 도입을 추진 중이며, 관련 재원은 유상할당 확대(발전 부문 2026년 15% → 2030년 50%)로 확보되는 수입과 연계될 예정이다. 다만 무상할당은 제5차 계획기간(2031년~)부터 유상 전환이 검토되는 한시적 조치이므로, CCfD는 이 전환기의 가교 역할을 하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에 정부 발표에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설계 요소에 초점을 맞춰 다음을 제언한다. 첫째, 대상 기술을 철강의 수소환원제철, 석유화학의 나프타 열분해 전기화 등 상용화 이전 핵심기술로 한정한다. 둘째, 행사가격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하기보다 독일의 기후보호계약(Klimaschutzverträge) 방식과 같이 경쟁입찰로 결정해 재정 효율성을 높인다. 독일은 2024년 최초 경매를 통해 15개 기업과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셋째, 시장 탄소가격이 행사가격을 상회하면 기업이 차액을 정부에 반납하는 양방향 구조로 설계해 재정 부담을 완화한다.
3) 재원 및 이행방식
CCfD 재원은 유상할당 수입과 기업의 차액 반납분으로 일부 상쇄 가능하며, 한국형 시장안정화제도(K-MSR)를 통한 배출권 가격 변동성 관리와도 연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접근은 탄소가격 신호에만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가격 변동성이 큰 국면에서 전환의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앞서 살펴본 회복력 있는 전환 경로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4) 장기 대응: 고부가가치산업 전환 촉진
1) 문제의식
단기 비용 안정화와 중기 투자여력 확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더라도, 한국 산업의 근본적인 에너지 안보 취약성은 제3장에서 살펴본 구조적 리스크 자체가 변화하지 않는 한 지속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다소비·저부가가치 생산 구조에서 벗어나, 에너지 집약도는 낮으면서 부가가치는 높은 산업으로 구조를 고도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 된다.
2) 우선순위 설정
이러한 고도화는 모든 업종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 업종별 특성에 따라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 철강, 석유화학과 같은 에너지 다소비 기간산업은 생산 공정 자체를 저탄소화하는 기술 전환(앞의 CCfD가 지원하는 영역)과 함께,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제품 비중을 확대하는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병행해야 한다. 이는 생산량 기준의 범용재 경쟁에서 벗어나 인증 장벽과 기술 락인(Lock-in) 구조를 갖춘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이동함으로써, 에너지 비용 변동성에 대한 노출도 자체를 구조적으로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반도체, 이차전지 등 에너지 집약도는 높지 않지만 부가가치가 큰 첨단산업은 에너지 다소비 문제 자체보다 안정적인 무탄소 전력공급망 확보가 핵심 과제라는 점에서 별도의 접근이 필요하다.
3) 지원 수단
이러한 산업구조 고도화를 뒷받침하려면 연구개발 세액공제 확대, 고부가가치 전환에 특화된 정책금융 프로그램 신설, 그리고 무엇보다 인증·표준화 등 비관세적 시장 진입장벽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규제 대응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아울러 EU 탄소국경조정제도와 같은 무역상 탄소규제가 오히려 고부가가치·저탄소 제품의 시장 지위를 강화하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역규제 대응 전략과 산업 고도화 전략을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정부가 특정 기술이나 업종을 사전에 지정하여 지원하는 방식은 이른바 ‘승자 선택(Picking winners)’에 따른 자원배분 왜곡 위험을 수반하므로, 성과 기반의 사후 평가 체계와 일정 기간 후 지원을 종료하는 일몰 원칙을 함께 마련해 이러한 위험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