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글로벌 재무장 시대, 방산 수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글로벌 재무장 시대, 방산 수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최근 글로벌 방산 시장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러-우 전쟁 장기화, 미·이스라엘-이란 간 군사충돌 확대, 미·중 전략경쟁 심화로 이른바 ‘신냉전’ 구도가 고착화되면서 세계 각국은 앞다투어 국방비를 증액하고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5년 세계 국방비는 2조 9,000억 달러에 달해 냉전 종식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NATO 회원국들 역시 ‘유럽 재무장(ReArm Europe)’ 기조 아래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중을 5% 수준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제 세계는 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든 대규모 군사충돌과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아진 사실상의 ‘글로벌 재무장 시대’로 전환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단순히 국방비 규모뿐만이 아니다. 과거 방산 수출이 무기체계 자체의 성능과 가격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공급망 안정성, 현지 생산, 운영유지보수(MRO), 첨단기술 협력, 금융지원 등을 포함한 종합 패키지 수출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이제 글로벌 방산 경쟁의 핵심은 ‘누가 더 좋은 무기를 만드는가’가 아니라 ‘누가 동맹국의 안보 생태계를 함께 구축할 수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K-방산 역시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2006년 방위사업청 출범 당시 2억 5,000만 달러(수주 기준)에 머물렀던 우리나라 방산 수출은 2025년 154억 달러로 무려 60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국방예산과 방위력 개선이 약 2.5~3배 증가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성과다. 이 같은 성장은 2000년대 후반 이후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방위산업의 신성장동력화’ 정책과 ‘방산 수출 산업화 전략’이 축적되어 나타난 대표적 결실이다. 특히 2011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업정책 싱크탱크인 산업연구원 내에 방위산업 전담 연구조직이 신설된 이후 방산 수출 확대, 산업 생태계 고도화, 방산클러스터 조성 등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와 제언이 K-방산 성장의 중요한 지적 기반 역할을 해 왔다.
한국의 세계 무기시장 점유율은 최근 5년(2021~2025년) 기준 3.0%로 세계 9위에 올랐다. 더욱 주목할 부분은 2025년 단년도 기준 점유율이 6% 수준까지 상승하며 세계 4위 수준으로 도약했다는 점이다. 2025년 말 주요 무기체계 7종의 방산 수출 계약 실적(수량 기준)에서도 총 3,743대로 미국(3,699대)을 넘어 세계 1위를 기록했다는 점은 한국 방위산업의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여준다.
특히 한국은 최근 폴란드에 K2 전차·K9 자주포·FA-50 경공격기·천무 다연장포 수출 등을 통해 세계 방산 시장의 핵심 공급국으로 부상했다. 빠른 납기와 가성비, 현지화 및 유연한 기술이전은 K-방산의 대표적 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러-우 전쟁 이후 유럽 국가들이 긴급 재무장에 나서는 과정에서 한국의 신속한 생산능력과 안정적인 공급 역량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제 K-방산은 단순한 ‘가성비 무기’ 수준을 넘어 ‘글로벌 안보 공급망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본의 부상과 캐나다 잠수함 사업의 전략적 의미
하지만 최근 글로벌 방산 시장은 이제 단순 플랫폼 수출만으로는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로 바뀌고 있다. 특히 일본의 방산 수출 확대 움직임은 한국에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일본은 전후 70여 년간 유지해온 방산장비 이전 제한 원칙을 사실상 폐지하며 미국·영국·호주·동남아 국가들과의 방산 협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는 단순 무기 수출을 넘어 공적개발원조(ODA), 공적안보원조(OSA), 기술협력, 공동 개발, 공급망 연계를 결합한 국가 차원의 패키지 수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 가와사키중공업, IHI 등 일본 주요 방산 기업들도 잠수함, 함정, 미사일, 항공 분야에서 미국 및 유럽 기업과 협력을 확대하며 글로벌 방산 공급망 편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미국과의 산업·기술 동맹을 기반으로 미사일 공동 생산, 정비·MRO 협력, 첨단 반도체·AI·우주기술 협력을 연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한 무기 수출이 아니라 국가 전략산업 전체를 결합한 ‘패키지형 방산 협력 모델’에 가깝다.
패키지 협력의 또 다른 대표 사례는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이다. 캐나다는 노후화된 빅토리아급 잠수함 대체를 위해 차세대 잠수함 사업을 추진했으며, 2026년 7월 독일 TKMS의 212 CD 잠수함이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캐나다 정부가 독일 잠수함을 선택한 이유는 최고 성능의 플랫폼과 함께 독일·노르웨이와의 공동 운용 체계, NATO 네트워크, 유럽 공급망 참여 및 캐나다의 독자적 유지 체계 구축을 결합한 ‘플랫폼+파트너십’의 패키지 전략이 핵심 경쟁우위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향후 한국의 대형 무기체계 수출도 개별 기업 중심의 플랫폼 판매에서 벗어나 정부 간 안보협력, 공동 훈련과 작전 운용, 현지 생산 및 정비 거점 구축, 기술이전, 전문인력 양성, 금융 지원, 민간 산업투자 및 제3국 공동 수출을 하나의 패키지로 설계해야 한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은 미래 방산 수출의 승패가 ‘누가 더 우수한 무기를 제공하는가’뿐만 아니라, ‘누가 구매국의 안보와 산업 생태계, 공급망과 운영유지 체계를 수십 년간 함께 구축할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K-방산 패키지 전략의 핵심은 AI·공급망·MRO
앞으로의 글로벌 방산 수출 구조는 단순 무기 판매를 넘어 다섯 가지 핵심 요소가 결합된 종합 패키지형 수출 모델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첫째, 금융 지원 패키지다. 최근 대규모 방산 수출은 단순 구매계약이 아니라 장기 저리 금융, 수출 신용, 공동 투자 등이 결합된 형태로 추진되고 있다. 유럽 주요국과 일본은 정부 차원의 금융 지원 체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국도 방산 수출 금융 체계를 보다 전략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둘째, 현지 생산 및 공동 개발 확대다. 폴란드 사례처럼 단순 완제품 수출보다 현지 생산과 기술협력을 병행하는 모델이 중요해지고 있다. 향후 중동, 동남아, 중남미, 유럽 시장에서도 현지 조립·생산·공동 개발·기술협력 요구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MRO와 후속 군수지원 체계 구축이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무기 자체보다 유지·보수·탄약·미사일·부품 공급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조차 우크라이나 지원 및 이란과의 군사충돌 과정에서 탄약 및 미사일의 심각한 재고 부족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이제 방산 경쟁력은 생산능력뿐 아니라 글로벌 운영유지(global sustainment) 능력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K9 자주포, 천궁-II, FA-50, KF-21 등 주요 무기체계에 대한 글로벌 MRO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한 이유다.
넷째, 공급망 패키지 전략이다. 방산은 더 이상 개별 기업만의 경쟁이 아니다. 희토류, 반도체, 특수합금, 배터리, AI 반도체 등 첨단 공급망 전체가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 미국은 2024년 국가방산전략(NDIS)을 통해 공급망 회복력 강화를 국가전략으로 추진 중이며, 유럽 역시 유럽방산전략(EDIS)을 통해 공동 생산, 공동 구매 및 운영유지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도 방산 공급망 안정화를 국가 산업전략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다섯째, AI·데이터 기반 국방 플랫폼 구축이다. 미래 방산 시장의 핵심은 단순 하드웨어가 아니라 데이터 기반의 소프트웨어 중심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의 팔란티어 테크놀로지(Palantir Technologies)와 안두릴 인더스트리(Anduril Industries), 쉴드(Shield) AI, 독일의 헬싱(Helsing)과 같은 스타트업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으로는 무기체계 수출과 함께 AI 기반 유지관리 플랫폼, 전장 데이터 분석체계, 유·무인 복합체계 운영 플랫폼까지 결합한 ‘디지털 방산 패키지’ 경쟁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제는 ‘K-방산 2.0’으로 진화해야
결국 글로벌 재무장 시대의 K-방산은 새로운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K-방산이 ‘빠르고 좋은 무기를 만드는 단계’였다면, 앞으로는 ‘동맹국의 안보·산업·기술 생태계를 함께 구축하는 단계’로 진화해야 한다. 특히 일본의 부상과 캐나다 잠수함 사업은 글로벌 방산 4대 강국 진입을 추진하는 한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앞으로의 방산 경쟁은 단순 플랫폼 경쟁이 아니라 금융, 공급망, 공동 개발, 현지 생산, MRO, AI 플랫폼까지 결합한 국가 차원의 종합 패키지 경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무기가 아니라 공급망과 운영유지 체계가 전쟁을 결정하는 시대다. K-방산 역시 기존의 ‘단품 무기 수출’ 모델을 뛰어넘어 ‘패키지 전략 기반의 K-방산 2.0’으로 과감히 진화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전환에 실패한다면 K-방산은 일시적 성과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향후 K-방산은 국가 차원의 패키지 전략 구축을 통해, 글로벌 안보·산업 생태계를 선도하는 국가전략산업이자 또 하나의 국가주력산업으로 성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