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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ET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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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속근과 지근
저 자 김도훈 게시일 2014-02-24

김도훈 산업연구원 원장

그렇게 힘차게 빙판을 지치던 이상화 선수는 왜 1,000m에서는 그만 뒤처지고 말았을까. 너무나 아쉬웠던 필자에게 해답을 주었던 설명이 바로 속근과 지근의 차이점이었다. 우사인 볼트처럼 단거리를 빨리 달려야 하는 운동선수는 가로 근육의 부피를 늘려서 이른바 '꿀벅지'를 만들어야 하고 케냐의 마라톤 선수들같이 지구력을 가져야 하는 운동선수는 세로 근육의 강도를 높여서 마치 초원의 임팔라 같은 몸매를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500m에서 따라올 자 없는 속도를 자랑하던 이상화도 조금 더 지구력이 필요한 1,000m에서는 그 장점을 다 발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냘프게 보이는 김연아가 지근 투성이의 근육으로 점프를 그렇게 힘차게 잘한다는 설명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나라 산업 아니 경제 전체는 속근 투성이다. 정말 빨리 뛰는 데는 세계 제일이다. 재빠르게 써야 할 근육을 단련한 선수(기업)들은 그 근육 단련을 제때에 도와준 코치(정부)의 지원을 받아 세계경제 올림픽에서 수많은 메달을 거둬들였다. 일찍이 섬유산업에서 시작해서 신발·전자·철강·조선·석유화학·자동차·컴퓨터·반도체·LCD·휴대폰에 이르기까지, 메달리스트 선수들의 이름들을 부르기에도 숨이 차다. 조금 뒤처져 있던 기계·정밀화학과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으로 불리는 새로운 유망주 산업들도 속근을 다듬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산업 올림픽팀을 이렇게 속근 투성이 선수들로만 구성해놓고 마음을 놓아도 될까. 성과를 빨리 올리는 데는 이들 속근산업들이 제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스포츠 올림픽에서 지근을 요구하는 종목들이 많이 있듯이 세계 산업 올림픽에도 지근을 갖춰야 성과를 올리는 분야가 많다. 아니 지근을 갖춰야 꾸준한 성과를 올리게 돼 있다. 독일·일본 등이 자랑하는 중소·중견기업들 즉, 강소기업들은 산업구조가 아무리 바뀌어도 소비자들의 기호가 변덕을 부려도 꾸준히 성과를 낸다. 이들 국가들의 지근 투성이 강소기업들은 빠른 성장 분야에서는 속근 투성이 우리 기업들에 성과를 내주지만 10년간, 20년간 아니 50년간 지속적으로 이룬 그들의 성과를 합쳐보면 산업 올림픽 장거리 분야의 승자로 뚜렷이 드러난다.

지근산업들은 어떤 산업들일까. '뿌리산업'들이 그 좋은 첫 번째 예가 될 것이다. 주조·금형·용접·소성가공(塑性加工)·표면처리·열처리 등의 여섯개 분야 산업들은 단기적 성과에 연연해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이들 산업들의 단련을 지원할 때의 정책 기조는 꾸준함이 돼야 한다. 특정 정부하에서 드러난 성과를 올리기가 어려우므로 정부가 바뀌어도 꾸준히 코치 역할을 잘해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소재산업을 들 수 있겠다. 모든 산업들에 기본 원료로 쓰이는 소재산업들은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키워가야 하는 또 하나의 분야이다. 새로운 산업으로 각광 받는 신소재 분야도 역시 지근 키우기 전략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지근을 필요로 하는 산업들이 경쟁력을 갖추면 속근을 요구하는 산업들도 덩달아 경쟁력이 올라가니 지근산업을 키우는 일의 의미가 더욱 커진다.

 

(2014.2.24, 서울경제 칼럼 원고)


※ 이 칼럼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산업연구원의 공식 견해가 아님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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